
솔직히 저는 <오징어 게임>을 처음 틀었을 때 그냥 자극적인 서바이벌 오락물일 거라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1화가 끝날 무렵, 저는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화면 속 참가자들의 절박함이 당시 제가 매달 고정비와 씨름하던 자영업자의 감각과 너무 정확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드라마 줄거리 요약이 아닙니다. <오징어 게임>이 왜 전 세계 시청자의 심장을 건드렸는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사회구조 비판이 우리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제가 직접 느낀 감각으로 짚어봅니다.
1.왜 이 드라마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나 : 사회구조라는 배경
일반적으로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는 아시아권에서 강세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오징어 게임>은 달랐습니다. 2021년 공개 직후 94개국 넷플릭스 1위를 동시에 기록했고(출처: Netflix 공식), 이 숫자는 단순한 흥행 지표가 아니라 "이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 통한다"는 신호였습니다.
제가 직접 느껴봤는데, 그 이유는 게임의 잔혹함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처한 상황의 설득력에 있었습니다. 주인공 성기훈은 도박 빚에 쪼들리고, 탈북자 새벽은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돈이 절실하고, 파키스탄 이주노동자 알리는 임금을 착취당했습니다. 이 캐릭터들은 특정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체제 아래 어느 사회에서든 존재하는 구조적 패배자들의 초상화입니다. 여기서 신자유주의란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경쟁을 최대화하는 경제 운영 방식을 말하는데, 그 결과로 개인은 모든 실패의 책임을 오롯이 혼자 떠안게 됩니다.
저는 자영업을 운영하면서 매출이 꺾이는 달이면 "내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을 보고 나서야 그 자책이 얼마나 시스템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반응인지 깨달았습니다. 개인의 실패로 포장된 것들 중 상당수는 사실 구조의 문제입니다.
2."공정한 게임"이라는 거짓말 : 공정 이데올로기 해부
드라마에서 주최 측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다." 이 대사가 저는 가장 섬뜩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도 똑같은 말을 너무 자주 듣기 때문입니다.
<오징어 게임>이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바로 공정 이데올로기(Fairness Ideology)입니다. 여기서 공정 이데올로기란, 규칙이 동일하게 적용되면 결과도 공정하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으니 결과는 각자 실력 탓"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는 이 논리의 허점을 보여줍니다. 게임 규칙은 평등해 보이지만, 체력이 다르고, 정보가 다르고, 뒤에서 작동하는 권력 관계가 다릅니다. 실제로 VIP들이 게임을 관람하는 장면은 승자와 패자를 구경하며 즐기는 상위 계층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제 경험상 이건 드라마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자영업 시장에서도 대형 플랫폼이 수수료 구조를 설계하고, 소상공인은 그 구조 안에서 '열심히' 경쟁합니다. 규칙은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게임판 자체를 만든 쪽이 어딘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공정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
드라마 속 공정한 게임이 실제로는 불공정한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규칙은 동일하지만, 자원(체력·정보·인맥)의 격차는 규칙 이전부터 존재한다
- 게임 구조 자체를 설계한 주최 측은 결코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다
- 패배의 책임이 개인에게 귀속되도록 프레임이 짜여 있다
- 연대(solidarity)를 시도할 경우 구조 자체가 이를 깨도록 설계되어 있다 — 구슬치기 게임이 대표적 사례다
3.그래도 인간이어야 한다 :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유일한 승리
드라마를 처음 볼 때는 "누가 살아남을까"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볼 때는 완전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사람으로 남으려 했던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오일남 할아버지와 기훈이 구슬 게임에서 보여주는 장면, 새벽이 기훈을 감싸는 순간, 알리가 상우를 믿는 장면들. 이 장면들은 서사적으로 결국 배신으로 끝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 자체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예상 밖으로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사회학 개념 중 아노미(Anomie)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아노미란 사회 규범이 무너지고 개인이 방향을 잃은 상태를 뜻하는데, 에밀 뒤르켐이 제시한 개념입니다(출처: IMDb - Squid Game). <오징어 게임>의 게임장은 극단적인 아노미 상태입니다. 규범이 사라지고 생존만이 목적이 된 공간에서도, 일부 인물들은 끝까지 윤리적 선택을 시도합니다. 드라마는 그 선택이 현실적으로 패배를 불러올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인간성의 마지막 거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자영업을 운영하면서 "이번 한 번만 원칙을 타협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유혹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제 경험상 그 타협이 쌓이면 결국 자신이 무엇을 위해 버티고 있는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징어 게임>이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그 답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 어쩌면 시스템 밖에서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자기결정권(Autonomy)일지도 모릅니다. 자기결정권이란 외부 강제 없이 자신의 삶과 선택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4.자주 묻는 질문
Q. 오징어 게임이 단순한 폭력물 아닌가요? 사회 비판이라고 보기엔 과장 아닌가요?
A.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폭력적 장면은 분명히 자극적이지만, 그 폭력이 왜 발생하는지의 구조를 드라마가 꽤 정교하게 설계해 놓았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라는 설정 자체가 시스템 비판의 출발점입니다. 자극성과 메시지가 반드시 반비례하지는 않습니다.
Q.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시즌 1만큼 메시지가 있나요?
A. 일반적으로 시즌 2는 시즌 1보다 메시지보다 오락성에 집중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제가 시즌 2를 보면서 느낀 것도 비슷했는데, 시즌 1이 던진 사회구조와 공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을 시즌 2가 온전히 이어가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다만 기훈 캐릭터의 내면 변화 추적은 여전히 볼 만합니다.
Q. 오징어 게임이 "헬조선"을 다룬다고 하는데, 외국인도 공감할 수 있나요?
A. 배경은 한국이지만 다루는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아래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양극화와 경쟁 압박입니다. 94개국 동시 1위라는 숫자가 그 공감의 범위를 보여줍니다. 국가마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감은 보편적입니다.
Q. 드라마를 보고 나서 현실이 더 우울해지지 않나요?
A. 솔직히 저는 처음 며칠간 잠을 좀 설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제가 지키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더 또렷해졌습니다. 우울감을 주는 콘텐츠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콘텐츠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오징어 게임>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다만 심리적으로 예민한 시기에는 한 번에 몰아보는 것보다 간격을 두고 보는 걸 권합니다.
5.결론
<오징어 게임>은 무서운 드라마가 아닙니다. 정확한 드라마입니다. 신자유주의 사회구조가 개인에게 전가하는 무게, 공정 이데올로기가 구조적 불평등을 어떻게 은폐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성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동시에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지를 2시간짜리 철학 강의보다 훨씬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얻은 건 사회 비판의 언어보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지금 어떤 게임을 하고 계시든, 그 게임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드라마를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 바로 보셔도 늦지 않았고, 이미 보셨다면 이번엔 인물에게 집중해서 다시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참고: Netflix 공식 — 오징어 게임 상세 정보 / IMDb — Squid Game (2021) 리뷰 및 제작 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