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며 감동받는 건 쉽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 성공이 과연 순수하게 그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라고요.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실존 인물 크리스 가드너의 삶을 바탕으로 한 감동 실화이지만,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감동만 받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묵직하고 씁쓸한 것이 목구멍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1.무보수 인턴십과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낯선 화면 속 남자의 줄거리
영화를 처음 만난 건 제 인생에서 꽤 바닥에 가까웠던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경제적 압박과 주변의 시선이 동시에 짓누르던 시기였고,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 자체가 무서웠습니다. 리모컨을 무의미하게 돌리다 우연히 화면에서 꾀죄죄한 양복 차림의 남자가 커다란 의료기기를 들고 샌프란시스코의 가파른 언덕길을 숨차게 달리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왜인지 그 거친 숨소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는 전 재산을 투자해 구입한 휴대용 골밀도 측정기, 정확히는 골밀도 측정 장치(Bone Density Scanner)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골밀도 측정 장치란 뼈의 밀도를 수치화해 골다공증 등을 진단하는 의료기기인데, 당시 이 기기는 병원에서 이미 보유한 장비와 기능이 겹쳐 팔리지 않았습니다. 밀린 월세, 세금 고지서, 아내의 이탈, 그리고 어린 아들과 함께 길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 순서대로 닥칩니다.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크리스가 선택한 것은 무보수 인턴십(Unpaid Internship)이었습니다. 무보수 인턴십이란 급여 없이 일정 기간 실무를 경험하는 제도로, 경쟁을 통과하면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20명이 지원해 단 1명만 뽑히는 극도의 생존 경쟁이라는 점입니다. 월급도 없이,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길 돈도 빠듯한 상황에서 이 도전에 뛰어드는 크리스의 모습은 무모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저는 그 무모함이 왜인지 낯설지 않았습니다.
2.아메리칸드림의 이면, 자본주의 비판이 영화 속에 숨어 있는 방식
이 영화를 단순히 "열심히 하면 된다"는 메시지의 자기계발 영화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원제는 The Pursuit of Happyness입니다. 여기서 행복을 뜻하는 영단어 'Happiness'가 아닌 'Happyness'라는 오타가 쓰인 이유가 있습니다. 극 중 유치원 벽에 잘못 인쇄된 철자를 감독이 그대로 제목에 차용한 것으로, 미국 독립선언서에 명시된 '행복의 추구(Pursuit of Happiness)'라는 문구를 비틀어 현실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1980년대 미국은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입니다. 레이거노믹스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추진한 자유시장 중심의 경제 정책으로, 복지 지출 삭감과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합니다. 이 시스템 안에서 세금을 하루 늦게 내면 유치장에 갇히고, 돈이 없어 병원에서 피를 팔아야 하는 크리스의 모습은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의 부재를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사회적 안전망이란 실직이나 빈곤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합니다. 크리스가 그 벼랑에 서게 된 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를 받쳐줄 구조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장면은 지하철 화장실 장면입니다. 크리스가 아들과 함께 지하철 공중화장실 문을 안에서 잠근 채, 밖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그 장면. 아들에게는 동굴 탐험 게임이라고 달래면서도 아버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그 모든 말을 지워버렸습니다. 솔직히 그 장면에서 저도 한참 동안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크리스의 그것과 너무 겹쳐 보였습니다.
영화가 그리는 행복의 최종 도달점이 결국 대형 증권사의 정직원, 즉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의 일원이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행복의 조건에 대한 물음을 던지면서 정작 그 답을 물질적 성공에서 찾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이유는, 성공의 화려함보다 그 과정에서 끝까지 아들을 놓지 않았던 한 아버지의 존엄성이 훨씬 더 강하게 스크린을 채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크리스 가드너의 삶을 다룬 연구와 사례는 미국 내 빈곤층의 계층 이동 가능성을 논의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 내 경제적 이동성(Economic Mobility)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제한적이며(출처: Economic Policy Institute), 크리스 가드너 같은 사례가 예외적으로 조명받는 이유도 그것이 평균이 아닌 극히 드문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이동성이란 한 개인이 태어난 계층에서 다른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3. 영화 행복을 찾아서가 지금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과 세 가지 질문
이 영화를 다시 보거나 처음 보려는 분이라면, 아래 세 가지 질문을 가지고 보시길 권합니다.
- 크리스가 성공한 것은 순전히 개인의 의지와 노력 때문인가, 아니면 그가 가진 특정 조건(지능, 인맥, 운)도 작용했는가?
- 영화가 보여주는 행복의 모습이 과연 내가 원하는 행복과 같은가?
- 현재 내가 처한 어려움이 나의 무능 때문인지, 아니면 시스템의 문제인지 구분해볼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은 제가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스스로 던지는 것들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울고 감동받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몇 년이 지나 다시 틀었을 때는 감동과 함께 불편함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오히려 영화를 더 가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는 이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서전을 출간하고 사회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그가 현재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Chris Gardner Media). 영화 한 편이 끝난 자리에서 그 실제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것도 꽤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도 저렇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드셨다면, 딱 그 에너지를 붙잡아 두십시오. 하지만 동시에 "왜 저 사람은 저렇게까지 해야 했는가"라는 질문도 함께 품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살아있을 때, 이 영화는 단순한 성공 신화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가 됩니다.
오늘 밤 무언가에 치여 지쳐있다면 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꺼내보십시오. 크리스가 아들의 손을 잡고 달리던 그 장면이,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말을 아마 대신 해줄 것입니다. 감동을 받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생각도 함께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방법이라고,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참고: ※ 참고 및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 행복을 찾아서

